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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 줄거리, 비극적 해석

by 향기가 짙은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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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

 2008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스튜디오 지브리의 <벼랑 위의 포뇨>입니다. 포뇨는 바다의 신인 엄마와, 인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포뇨의 아빠는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이 싫어 바다에 살며 포뇨를 곁에서 보호하려 하지만, 포뇨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합니다. 포뇨는 아빠를 떠나 도망치며 여러 가지 일들이 생깁니다. 순수하고 맑은 동화 같은 작품이지만, 한편으론 맑고 평온한 모습이 오히려 비극적인 해석이 나오기도 한 영화입니다.

 

1. <벼랑 위의 포뇨> 줄거리

 바닷속 물고기 소녀 브륜힐데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습니다. 이 소녀는 아버지 몰래 바다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친 그물을 피하다가 유리병에 갇히고 맙니다. 쓰레기 가득한 해안에 표류하다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년 소스케에 의해 발견이 됩니다. 소스케는 유리병을 깨고 물고기 소녀를 양동이로 옮겨 줍니다. 소스케는 물고기를 '포뇨'라고 이름을 붙이고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포뇨는 소스케가 자신을 구하다 입은 상처를 핥아 치유를 해줍니다. 포뇨는 마법 능력을 가진 물고기 소녀였습니다. 포뇨는 소스케에 의해 인간세계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후지모토가 다시 그녀를 찾아 바닷속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포뇨는 아버지한테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하며 아버지에게서 도망칩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포뇨는 아버지가 모아 놨던 정수를 해방시킵니다. 포뇨는 정수 물에 의해 어린아이의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바닷속 세계와 인간세계가 뒤흔들리며 큰 해일을 일으킵니다. 기상청은 갑자기 변화된 기후에 긴급 보도를 하였고, 집 안에선 방송이 끊길 정도로 밖의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되어 마냥 기쁜 포뇨는 파도를 타고 신나게 소스케를 찾아갑니다. 소스케는 바로 그녀를 자신이 살려준 마법의 물고기 포뇨인 것을 알아봅니다. 포뇨는 소스케와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밌게 놉니다. 밤이 깊어지자 태풍과 해일이 심해져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소스케에게 언덕 위의 집은 등대 같은 존재니 집을 지켜달라고 하고 해바라기 양로원이 걱정되어 다녀온다고 말하고 떠납니다. 시간이 지난 다음 날 소스케와 포뇨는 평온한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깹니다. 문을 열어보니 언덕 위의 소스케의 집 현관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언덕 밑 마을에는 여러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유유자적 다니고 있었습니다. 소스케와 포뇨는 리사를 찾아 소스케의 장난감 배를 타고 해바라기 양로원으로 찾아갑니다. 마을은 물에 잠겨 해수면만 보이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다친 사람 하나 없이 배 위에 다들 잘 모여있었고, 바다를 항해하는 소스케의 아빠도 평온해진 바다에서 무사히 잘 있었습니다. 리사를 찾아 도착한 양로원은 마법으로 인해 할머니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고, 리사와 포뇨의 엄마 그란만마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란만마레는 소스케를 찾아 포뇨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포뇨가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소스케는 포뇨를 좋아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란만마레는 바다와 인간세계의 혼란이 메꿔지고 평화가 왔다며 선포하고 포뇨는 소스케와 입맞춤을 하며 인간이 된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 비극적인 해석

 지브리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영화의 해석 또한 다양합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연출로 관객의 동심을 자극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벼랑 위의 포뇨> 또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해일로 인한 비극적인 해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바다의 해일이 밀려오며 마을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바닷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소스케의 아버지도 거센 파도에 힘들어하며 배의 무덤을 보게 됩니다. 그 다음날 마을의 제일 꼭대기의 소스케 집까지 물이 차며 마을은 모두 물에 잠기게 되지만, 큰일을 겪은 사람들 답지 않게 마을 사람들은 축제를 연 것처럼 즐거워하며 한곳으로 향합니다. 아기를 안은 한 가족은 낡은 나룻배를 타고 소풍을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리사를 찾아 떠난 양로원에서는 휠체어만 덩그러니 있는 채 물속에서 젊은 시절처럼 깔깔거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할머니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전날 해일이 지나간 것 같지 않은 편안함들이 느껴집니다. 바로 저승에서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저승길로 가는 것이며, 포뇨와 쇼스케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터널을 지나 새롭게 환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정말 저승의 모습을 표현했다면, 저승까지 아름답고 기분 좋게 묘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한 지브리의 영화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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