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하나의 사실에 두 가지의 이야기가 해석됩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더 믿으시나요? 프로이트 이론을 대입하면 두 가지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프로이트 이론으로 영화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리뷰입니다.
1. 에고(파이) VS 이드(리차드 파커)
주인공 파이는 바다를 떠다니며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배를 둘러싼 대결을 펼칩니다. 특히 파이는 리차드파커를 계속 배 밑으로 밀어 넣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배 밑으로 호랑이를 넣는다고 해서 그가 안전한 것도 아닌데 왜 영화에서 그는 계속 호랑이를 배 밑으로 집어넣으려고 할까요? 우린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의 정신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에겐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생각의 집이 있고, 그 집에는 에고와 이드라는 생각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고라는 사람은 평소에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의식 상태에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식 상태에서 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당신이 바로 에고입니다. 에고를 다른 말로 자아라고도 합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무의식이 존재합니다. 이 무의식에 이드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다른 말로 본능입니다. 본능은 폭력, 분노, 두려움과 같이 생존에 필요한 동물적인 본능을 뜻합니다. 평소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건 에고입니다. 우린 폭력 분노와 같은 원초적 본능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에고의 삶을 살아가던 인간에게 문득 동물적 본능이 튀어나오는 때가 있는데, 보통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입니다. 그럼 다시 영화로 가서 리차드 파커가 배를 장악할 때를 보시면 이 이론이 적용됐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주방장으로 상징되는 하이에나가 엄마로 상징되는 원숭이를 공격할 때입니다. 주방장이 엄마를 죽이자 이성을 잃고 무의식에 숨어 있던 이드가 튀어나와 주방장을 죽입니다. 이 말 그대로 배 밑에 숨어있던 호랑이가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죽입니다. 배에 탄 걸 사람이 아닌 동물들로 표현해 놓은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드는 말 그대로 동물적인 본능입니다. 생존을 위해 구명보트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겐 본능뿐입니다. 그 순간의 인간들은 살고자 하는 본능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게 이 영화의 시선입니다. 배의 설정도 의미심장합니다. 리차드 파커가 튀어나온 곳, 본래 리차드 파커의 공간은 배 밑입니다. 배 밑에는 생존 가이드북 음식들과 같이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이 들어있습니다. 무의식은 생존에 필요한 본능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감안할 때, 배 밑은 무의식의 공간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 밑이 무의식의 공간이듯 배 위는 의식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에고를 표현하는 파이와 이들을 표현하는 호랑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인 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갈등과 대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파이와 리차드 파커가 사실은 한 사람이고 그 대결 구도가 한 사람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리차드 파커의 원래 이름은 Thirsty입니다. 그리고 성당에서 신부님이 파이에게 "You must be thirsty."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목마르구나'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t를 대문자 T로 바꾸면 "You must be Thirsty." 즉, '당신이 떨스티씨군요'라는 해석이 됩니다. 리차드 파커와 파이는 둘 다 이름이 Thirsty로 동일 인물을 암시합니다.
2. 초자아(종교)
'에고와 이드' 말고도 우리의 생각을 주체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초자아'입니다. 생각엔 의식 무의식이라는 집이 있고 그 속에는 에고, 이드란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요. 사실 저 집엔 '초자아'라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주체가 하나 더 살고 있습니다. 초자아는 쉽게 말해 사회적 규범입니다. 법, 전통, 규칙, 종교, 부모의 교육과 같은 것들이 내면화된 것입니다. 초자아는 의식, 무의식의 범죄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파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자아가 바로 이성에 대한 아버지의 교육과 종교입니다. 초자아의 말에 따라 살던 파이는 바다를 표류하게 됩니다. 그럼 이성과 종교가 파이를 살려줬을까요? 파이를 살려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그의 이성과 종교가 아닌 그의 본능입니다. 그를 살려준 건 인육을 먹으면서까지 살라고 시킨 그의 본능이지 기존의 삶 속에서 그를 규정하던 이성과 초자아가 아닙니다. 폭풍우를 만나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는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배를 꽉 붙잡고 있는 본능을 보며 신에게 자신을 그만 괴롭히라고 소리 지릅니다. 결국 그의 이성은 무의식인 배 밑으로 숨어버리고 생존을 향한 처절한 본능만이 배 위에 남아 그의 생존을 도모합니다. 이런 초자아에 대한 불신과 성과 본능의 갈등 속에서 본능은 한 우주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이성과 종교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본능이 진짜 우주의 원리가 아닐까? 우주를 이해한 것은 아버지가 말한 이성도, 파이가 따르던 종교도 아니었습니다. 본능이 파이가 이해한 우주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본능인 호랑이로 시작해서 우주를 깨닫고 이성으로 돌아오는 연출이 나오기도 합니다.
3.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성과 종교가 우주의 원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파이가 종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될까요? 종교학은 신학과 다릅니다. 신학은 말 그대로 신의 믿음에 대한 학문입니다. 그에 반해 종교학은 신을 믿는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은 왜 신을 믿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연구가 바로 종교학입니다. 파이가 작가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말하고,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내 신화적 이야기를 당신은 믿을 것인가? 믿기 힘들다면 당신은 신 또한 믿을 수 없어야 한다'라는 종교학적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파이의 동물 이야기, 파이의 인간 이야기 중에 어떤 이야기를 더 믿으시나요? 신은 믿음에 관한 것이기에 당신이 종교를 믿는다면 동물 이야기를 안 믿을 이유가 없고, 종교를 믿지 않는다면 인간 이야기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그 이후의 생각은 관객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파이의 고민을 체험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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