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넷플릭스 배급 영화 <돈 룩 업>입니다. 영화 속 배우들은 다수가 아카데미 수상을 한 배우들이며, 넷플릭스가 배급하자마자 한동안 글로벌 1위를 차지한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기후 온난화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영화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기후 온난화 말고 또 다른 문제를 가리키는 이야기도 보입니다. 바로 '포스트 트루스'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더 이상 깨끗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1. '포스트 트루스'
<돈 룩 업>은 기후 온난화 말고 또 다른 아주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객관적 진실을 매개체로 해서 소통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고 진실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버린 현재 sns 시대의 답답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돈 룩 업>은 기후 문제에 관한 영화이면서 '포스트 트루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포스트 트루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용어입니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믿음과 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최근의 트렌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실이 다른 고려 사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부여받고 그 결과 진실로부터 이탈하는 행위에 대해서 대중이 아주 수용적이고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런 '포스트 트루스'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는 과학 부인 주의입니다. 최근에 탈 진실의 트렌드가 유독 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진실 따위야 어쨌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한 진실을 탐구하고 검증하는 프로세스 그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공개적으로 뻔뻔스러운 태도 때문입니다. 진실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이런 태도가 대중에게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은 예전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금 시대에 두드러지는 현상입니다. <돈 룩 업>에서도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의 가치를 마주 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대사인 "과학자들은 100%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체계적인 관찰과 상호 검증을 통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과학 특유의 신중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악용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는 객관적인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진실은 보는 사람의 관점 나름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99.78%라고 과학자들이 말을 해도 그 나머지 0.22%의 가능성도 또 다른 진실이 아니냐면서 그걸 붙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 룩 업>의 모든 장면 모든 대사에는 탈 진실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시들로 가득합니다.
2. 두 과학자 디비아스키와 민디
'포스트 트루스'에 의해 영화의 주인공 과학자 디비아스키와 민디는 엇갈리는 행보를 보여줍니다. 이 둘은 잘 훈련된 과학자들입니다. 체계적인 관찰과 상호 검증을 통해 보편적인 사실을 규명하는 일에 전문화된 사람들이죠. 또한 혜성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즉 이들은 진실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 진실이 자기에게 득이 되건 해가 되건 상관없이 이들에게 진실은 진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평범한 두 과학자가 정치와 언론에 노출되고 나서부터 보이는 행보는 서로 엇갈리게 됩니다. 우선 디비아스키를 먼저 보게 되면 그녀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 맞춰서 사람들의 칭찬이나 부러움을 받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혜성의 자기 이름을 붙이게 되는 과학자로서 나름 영광스러운 명예를 얻게 되었어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디비아스키는 백악관의 한 장군이 자기들에게서 공짜 선에게 값을 받아 가자 그가 왜 그랬을지 궁금해하면서 몇 개월 동안 한참을 생각을 합니다. 그녀는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며 세상의 배후에 있는 진짜 진실에 관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왔을 때에도 대통령과 보좌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유심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올린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세상 문제에 뒤늦게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자 그 배후의 속셈도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이를 대통령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폭로합니다. 디비아스키는 이렇게 사실을 말할 때도 듣기 좋게 포장하거나 완화하지 않고 그냥 직설적으로 던져버립니다. 하지만 디비아스키에 이렇게 눈치코치 보지 않고 고지식할 정도로 진실에만 충실한 자세는 다른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되고 결국 인터넷에서 조리 돌림 당하면서 방송과 정부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반면에 민디는 방송 초반에 외계인이 있다든가 하는 농담으로 사회자들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점수를 땄습니다. 디비아스키와는 달리 그는 저쪽 편의 입장에 맞춰주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민디의 이런 융통성 있는 성향은 정치인과 방송인들에게 잘 보이게 되었고 이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게 됩니다. 유명 방송인과 썸도 타고 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이용하기 좋은 꼭두각시 과학자로 낙점을 받은 것입니다. 아마 민디는 이렇게 대중과 권력자들의 입맛을 맞춰주면서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희성을 막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민디가 그렇게 대중과 권력자들의 인정과 관심을 받을수록 점점 더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장 코앞에 주어지는 인정과 관심의 맛을 보게 된 그는 엄중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과학자로서의 본분을 점점 소홀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꿀맛을 선사하는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앞잡이가 됩니다. 과학자 민디가 언론 그리고 권력과 결탁하는 과정은 우리가 진실에 눈 감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정과 관심 권력과 돈 등 이런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달콤한 유혹들이 코앞에 주어지자 민디 같은 과학자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올린 대통령과 베시에 미친 짓을 막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되고 심지어 그들을 두둔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가 방송인 브리와 불륜을 저지르는 설정은 이렇게 과학자로서의 본분과 양심을 잊어버린 그의 탈락한 상태를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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